전학 첫날부터 지각이었다. 그것도 고작 3분.
한서윤은 굳게 닫힌 교문 앞에 서서 휴대전화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오전 8시 33분. 숫자가 달라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두 번이나 화면을 껐다 켰다. 그러나 33이라는 숫자는 야속할 정도로 선명했다.
“진짜 최악이다.”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어젯밤에는 분명 모든 준비를 끝냈다. 교복도 미리 꺼내놓았고, 가방도 챙겨두었다. 학교까지 걸리는 시간도 지도에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알람까지 맞춰놓았으니 적어도 첫날 지각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버스였다.
평소라면 15분이면 온다던 버스가 오늘따라 25분이나 늦었다. 차라리 중간에 내려서 뛰었더라면 조금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봐야 닫힌 교문이 열릴 리 없었다.
서윤은 철문 사이로 학교 안을 들여다봤다.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고 멀리 교실 창문만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전학을 결정했을 때 서윤은 딱 한 가지를 마음먹었다.
이번 학교에서는 조용히 지내자.
친구도 적당히 사귀고, 공부도 적당히 열심히 하고, 가능하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말자. 그렇게 남은 학교생활을 무사히 보내고 졸업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새로운 학교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서윤은 한숨을 내쉬며 교문 옆을 살폈다. 경비실 같은 곳이 보였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교무실에 전화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휴대전화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전학 첫날부터 ‘제가 지각했는데 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혹시 후문이 있을지도 몰랐다.
서윤은 학교 담장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좁은 골목이 나타났고, 그 끝으로 작은 철문 하나가 보였다. 서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때였다.
“거기도 잠겼어.”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서윤이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등교 시간이 지난 골목은 조용했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여기.”
이번에는 분명했다.
목소리는 위에서 들려왔다.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담장 위에 남학생 하나가 앉아 있었다.
흰 셔츠에 짙은 색 교복 바지. 넥타이는 제대로 매지도 않고 목에 대충 걸쳐놓았다. 한쪽 다리를 담장 밖으로 늘어뜨린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원래 자기 자리인 것처럼 보였다.
서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학교에 들어가려는 학생이라기보다는 학교에서 탈출하려는 학생에 가까웠다.
“뭐 해?”
남학생이 먼저 물었다.
서윤은 황당했다.
“그건 내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왜?”
“너 지금 담장 위에 있잖아.”
남학생은 그제야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을 확인하듯 아래를 한번 내려다보았다.
“그러네.”
너무 태연한 대답이었다.
서윤은 더 이상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첫날부터 이상한 애와 엮여서 좋을 건 없었다. 그대로 지나쳐 후문 쪽으로 향하려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잠겼다니까.”
서윤의 발이 멈췄다.
“확인해봤어?”
“응.”
“정문은?”
“9시까지 안 열어줘.”
서윤이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남학생은 여전히 담장 위에 앉아 있었다. 서윤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자신이 앉아 있는 담장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들어가려면 여기밖에 없어.”
서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리고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여기로 넘어가라고?”
“응.”
“싫어.”
“그럼 기다리든가.”
“얼마나?”
“9시까지.”
서윤은 다시 휴대전화를 꺼냈다. 8시 37분이었다.
첫날부터 20분 넘게 지각하는 것과 학교 담장을 넘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나쁜지는 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너 전학생이지?”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알았어?”
“처음 보니까.”
“네가 전교생 얼굴을 다 알아?”
남학생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 어떻게 아는데?”
“우리 학교 애들은 지각하면 정문으로 안 와. 바로 여기로 오거든.”
서윤은 할 말을 잃었다.
이상하게 논리적이었다.
남학생은 담장 안쪽으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잠시 후 담장 위로 얼굴만 다시 나타났다.
“가방 줘.”
“왜?”
“가방 메고 올라오면 저 나뭇가지에 걸려.”
그가 가리킨 곳을 보니 담장 옆 나무에서 뻗어나온 굵은 가지 하나가 절묘하게 길을 막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누군가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 같은 낡은 나무 상자도 있었다.
한두 명이 이용한 길이 아닌 모양이었다.
서윤은 한참 고민하다 결국 가방을 벗었다.
“떨어뜨리면 안 돼.”
남학생이 손을 뻗으며 웃었다.
“가방보다 네가 떨어지는 걸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야?”
“가방 비싸.”
“너보다?”
“응.”
남학생의 표정이 잠깐 멈췄다가 이내 웃음이 터졌다.
“너 좀 웃긴다.”
“안 친해질 거니까 착각하지 마.”
“나도 친구 하자고 안 했는데.”
서윤은 입을 다물었다.
처음 보는 애한테 말려든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무 상자 위로 올라서자 생각보다 담장이 높았다. 아래에서 볼 때는 어떻게든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손으로 담장 끝을 잡고 보니 만만치 않았다.
“오른발부터 올려.”
“알아.”
“모르는 것 같은데.”
“조용히 좀 해.”
남학생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서윤은 이를 악물고 몸을 끌어올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담장 위에 걸터앉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만큼은 꽤 뿌듯했다.
문제는 반대편이었다.
안쪽 바닥을 내려다본 서윤의 표정이 굳었다.
“잠깐만.”
“왜?”
“이렇게 높았어?”
아래에 서 있던 남학생이 어깨를 으쓱했다.
“별로 안 높은데.”
“너한테나 그렇겠지.”
가까이에서 보니 남학생은 키가 상당히 컸다. 서윤은 내려가는 방법을 고민하며 담장 위에서 꼼짝하지 못했다.
남학생이 보다 못해 양팔을 들었다.
“손잡아 줄게.”
“됐어.”
“넘어지면?”
“안 넘어져.”
“그 말 하고 넘어진 애 많이 봤는데.”
“그중에 나는 없잖아.”
“오늘 생길 수도 있지.”
서윤은 그를 노려본 뒤 몸을 돌렸다. 저 손을 잡느니 혼자 내려가는 게 나았다.
담장을 손으로 짚고 조심스럽게 한쪽 발을 내렸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될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셔츠 소매가 나뭇가지에 걸렸다.
“어?”
중심이 무너졌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서윤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큰일 났다.
그 짧은 생각 뒤에 충격이 올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의 팔이 서윤의 몸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니까 잡으라니까.”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서윤이 천천히 눈을 떴다.
아까 그 남학생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가까웠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선명한 눈이 보였다. 장난스럽게 웃을 때는 몰랐는데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은 의외로 차분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서윤이었다.
“이제 내려놔도 되거든.”
“아.”
남학생이 급히 팔을 풀었다.
“미안.”
서윤은 두 걸음쯤 뒤로 물러났다. 넘어진 것도 아닌데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담장을 넘느라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방.”
남학생이 가방을 내밀었다.
서윤은 얼른 받아 들었다.
“고맙다는 말은?”
“누가 담장 넘으라고 했는데?”
“그래도 받아줬잖아.”
서윤은 가방을 어깨에 메다가 잠시 그를 바라봤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마워.”
“별말씀을.”
남학생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오늘 일은 잊어.”
“왜?”
“전학 첫날 담장 넘었다는 걸 누가 알면 좋겠어?”
“난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남학생이 재미있다는 듯 서윤을 바라봤다.
“생각해 볼게.”
“생각하지 말고 잊어.”
서윤은 그대로 돌아섰다.
뒤에서 또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교가 아무리 작아도 학생이 몇백 명은 될 것이다. 같은 학년인지도 모르고, 같은 건물에서 수업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아침의 일은 작은 사고 하나쯤으로 끝날 터였다.
적어도 서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확히 27분 뒤까지는.
“얘들아, 잠깐 조용.”
담임 선생님의 말에 떠들썩하던 교실이 조금씩 조용해졌다.
서윤은 교실 앞에 서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조금 전 담장을 넘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긴장됐다.
“오늘부터 우리 반에서 같이 생활할 친구야. 자기소개할래?”
서윤은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한서윤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들렸다. 누군가는 반갑게 웃어주었고 누군가는 친구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서윤이 자리는…….”
담임 선생님이 교실을 둘러보았다.
“마침 하나 있네. 창가 맨 뒤 빈자리 보이지?”
서윤은 선생님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창가 쪽 마지막 줄에 책상 하나가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는 남학생 하나가 엎드려 자고 있었다.
서윤은 별생각 없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런데 자리에 가까워질수록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책상 옆에 아무렇게나 걸어둔 넥타이.
조금 흐트러진 검은 머리.
설마.
서윤의 걸음이 느려졌다.
아니겠지.
학교에 남학생이 몇 명인데.
서윤이 빈자리 앞에 도착했을 때 엎드려 있던 남학생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서윤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남학생도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알아봤다는 듯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어?”
서윤은 그 한마디만으로 불길함을 느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제발.
그러나 남학생은 턱을 괸 채 서윤을 올려다보더니 반갑다는 듯 말했다.
“담장.”
주변에 있던 아이 몇 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뭐가 담장이야?”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이 물었다.
서윤은 눈을 질끈 감았다.
끝났다.
새 학교에서는 조용히 지내겠다던 계획이 첫날부터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강도윤.”
남학생이 선생님을 바라봤다.
“네.”
“전학생 괴롭히지 말고 학교생활 잘 알려줘. 네가 반장이잖아.”
서윤은 눈을 떴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옆을 돌아봤다.
반장?
아침부터 지각해서 담장을 넘던 애가?
도윤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 잘 알려줄게요.”
선생님이 출석부로 시선을 돌리자 도윤이 서윤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잘 부탁해, 짝꿍.”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운동장에서는 체육 수업을 시작한 학생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모든 것이 평범한 전학 첫날의 풍경이었다.
단 하나.
옆자리에 앉은 강도윤만 빼면.
서윤은 아직 몰랐다.
오늘 아침 자신이 넘은 것이 학교의 낡은 담장 하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이 우연한 만남이 자신이 그토록 조용히 보내고 싶었던 열일곱 살의 시간을 완전히 바꿔놓게 되리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