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이 뭐야?”
앞자리에 앉은 여자아이가 다시 물었다. 서윤은 가방을 책상 옆에 내려놓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전학 첫날부터 지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띄었다. 거기에 학교 담장을 넘어 들어왔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진다면 앞으로 한동안 자신의 이름 앞에는 ‘담장 넘은 전학생’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을 게 뻔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서윤이 먼저 대답하고 옆자리의 도윤을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면 바라본 것이 아니라 노려봤다. 도윤은 그 뜻을 알아들었는지 잠시 입꼬리를 올렸다. 서윤은 책상 아래에서 주먹을 살짝 쥐었다. 한마디라도 더 하면 첫날이고 뭐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경고였다.
“아침에 학교 앞에서 봤거든. 담장 옆에서.”
도윤이 태연하게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중요한 부분을 아주 교묘하게 빼먹었을 뿐이었다.
“아, 그래서 담장?”
앞자리 아이는 금세 흥미를 잃고 다시 몸을 돌렸다. 서윤은 그제야 작게 숨을 내쉬었다.
“고맙다고 해.”
도윤이 교과서를 꺼내며 말했다.
“뭐가?”
“비밀 지켜줬잖아.”
“그걸 비밀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거든.”
“그럼 말해도 돼?”
도윤이 앞을 보며 손을 들려 하자 서윤이 재빨리 그의 손목을 잡아 내렸다.
“하지 마.”
도윤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서윤도 자신이 그의 손목을 붙잡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침에 담장 아래에서 자신을 받아주던 순간이 불쑥 떠올랐다. 서윤은 얼른 손을 놓았다.
“아무튼 말하지 마.”
“알았어.”
도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잠시 후 교실 앞문이 열리고 첫 번째 수업을 맡은 선생님이 들어왔다. 아이들이 교과서를 꺼내는 소리와 의자를 움직이는 소리가 한꺼번에 교실을 채웠다. 서윤도 새로 받은 교과서를 펼쳤다. 첫날의 첫 수업이었다. 이제야 조금 정상적인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서윤은 옆에서 작은 종이 하나가 밀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도윤이었다.
서윤은 종이를 무시했다. 잠시 후 종이가 조금 더 가까이 왔다. 이번에는 볼펜 끝이 종이를 밀었다. 책상 한가운데까지 침범해오자 결국 서윤은 종이를 펼쳤다.
전학 어디서 왔어?
서윤은 잠시 문장을 바라보다 종이 아래에 답을 적었다.
수업 들어.
종이를 돌려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듣고 있음.
그런데 왜 나한테 물어봐?
반장이니까.
반장이 지각하고 담장 넘어?
이번에는 답장이 조금 늦었다.
반장도 사람이니까.
서윤은 피식 웃을 뻔했다. 웃음이 나오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꾹 다물었다. 옆을 보니 도윤이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쪽지 같은 건 주고받지 않았다는 듯 꽤 진지한 얼굴이었다.
서윤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교과서 아래에 넣었다.
“답 안 했는데.”
도윤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뭘?”
“어디서 왔냐고.”
서윤은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멀리서.”
“어디?”
“멀리.”
“외국?”
“아니.”
“제주도?”
“조용히 해.”
그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도윤.”
도윤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
“네.”
“전학생이랑 벌써 친해진 건 좋은데 수업 끝나고 친해져라.”
교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서윤은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도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네.”
그리고 잠시 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친해졌대.”
서윤은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낯설기만 하던 교실이 아주 조금 덜 불편해졌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 몇몇 아이들이 서윤의 자리로 모여들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전에 다니던 학교는 어땠는지, 좋아하는 아이돌은 있는지, 어느 중학교를 나왔는지 질문이 쏟아졌다.
서윤은 가능한 한 무난하게 대답했다. 좋아하는 과목은 영어. 싫어하는 과목은 수학. 매운 음식은 잘 못 먹고, 운동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전 학교는 이곳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학교 이름을 묻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다른 지역이야.”
서윤이 웃으며 말을 돌리자 아이들도 더 캐묻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은 달랐다. 도윤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에서 일어나 친구들과 교실 밖으로 나갔다. 이상하게도 서윤은 그게 조금 신경 쓰였다. 아까는 그렇게 집요하게 묻더니 갑자기 관심을 끊어버린 것이 의외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아이가 서윤에게 함께 급식실에 가자고 했다.
“나 김하린이야. 아까 정신없어서 소개도 못 했네.”
하린은 말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급식실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어느 선생님이 숙제를 많이 내는지, 매점에서는 무엇이 맛있는지, 체육복은 어디에서 사야 하는지까지 빠르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네 짝.”
하린이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강도윤?”
“응. 쟤 말은 절반만 믿어.”
“왜?”
“장난 많이 쳐.”
서윤은 아침의 일을 떠올렸다. 그건 이미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나쁜 애는 아니야. 오히려 너무 착해서 문제지.”
“착해서 문제가 된다고?”
“응. 남의 일에 괜히 끼어들거든.”
하린이 고개를 저었다.
“작년에도 그랬고.”
서윤이 무심코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하린은 입을 열려다가 멈췄다.
“아, 아니다. 별거 아니야.”
그때 뒤에서 다른 친구가 하린을 불렀다. 하린은 금세 화제를 바꾸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서윤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작년에도 그랬고.’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굳이 궁금해할 이유는 없었다. 강도윤은 오늘 처음 만난 아이였다. 그것뿐이었다.
오후 수업까지 모두 끝났을 때 서윤은 생각보다 지쳐 있었다. 전학이라는 건 단순히 학교 건물만 바뀌는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의 이름부터 교실의 규칙, 급식실의 위치, 아이들의 관계까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종례가 끝나자 서윤은 누구보다 먼저 가방을 챙겼다.
“한서윤.”
담임 선생님이 불렀다.
“네?”
“학생기록 때문에 확인할 게 조금 있어. 교무실 들렀다 가.”
“네.”
서윤은 다시 가방을 내려놓았다. 교실의 아이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하린도 학원 시간이 늦었다며 먼저 갔다. 도윤 역시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서윤은 담임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로 향했다. 확인할 것은 별것 아니었다. 주소와 보호자 연락처, 이전 학교에서 넘어온 서류 몇 가지였다.
문제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였다.
담임 선생님이 다른 서류를 찾는 사이, 서윤은 우연히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았다.
한서윤.
그 아래에는 이전 학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윤은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
“선생님.”
서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애들이 제가 전에 다니던 학교를 알게 되나요?”
담임 선생님이 의아한 표정으로 서윤을 바라봤다.
“아니. 그걸 따로 알려줄 일은 없는데?”
“아…… 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
서윤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선생님은 잠시 서윤을 바라봤지만 더 묻지 않았다.
교무실에서 나온 서윤은 긴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괜찮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다. 이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도, 자신이 왜 갑자기 전학을 결정했는지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서윤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교실에 두고 온 필통이 생각난 것은 1층까지 내려간 뒤였다.
“아, 진짜.”
오늘은 되는 일이 없었다.
서윤은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수업이 끝난 학교는 아침과 전혀 다른 곳처럼 조용했다. 열린 창문으로 운동장에서 부는 바람이 들어왔고, 복도 끝에서 운동부 학생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교실 문을 열었을 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서윤은 자기 자리로 가서 서랍을 뒤졌다. 필통은 교과서 아래에 있었다.
“찾았다.”
그것을 가방에 넣으려던 순간 무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작게 접힌 종이 한 장이었다.
서윤은 아까 도윤과 주고받았던 쪽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종이를 펼친 순간 손이 멈췄다.
자신의 글씨도, 도윤의 글씨도 아니었다.
종이에는 단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새 학교는 마음에 들어?
서윤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누군가 장난으로 써놓은 것일 수도 있었다. 오늘 자신이 전학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종이를 뒤집어보았다.
뒷면에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이번에는 오래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서윤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이번에는.
그 세 글자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이 학교에 없어야 했다.
“뭐 해?”
갑자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서윤이 화들짝 놀랐다. 본능적으로 종이를 구겨 손안에 감췄다.
교실 문 앞에 도윤이 서 있었다.
“너…… 갔던 거 아니었어?”
“두고 간 게 있어서.”
도윤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서윤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도윤의 시선이 잠깐 서윤의 손으로 향했다.
“그거 뭐야?”
“아무것도 아니야.”
서윤은 급하게 종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도윤은 더 묻지 않았다. 자기 자리에서 이어폰을 챙긴 뒤 가방에 넣었다. 그러고는 교실을 나가려다 문 앞에서 멈췄다.
“한서윤.”
“왜?”
도윤은 잠시 서윤을 바라봤다. 평소처럼 장난기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까 교무실에서 봤어.”
서윤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뭘?”
“네 서류.”
도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전에 다니던 학교 이름.”
서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윤이 그 학교를 알고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이름만 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도윤이 먼저 시선을 거뒀다.
“걱정하지 마.”
“……뭘?”
도윤이 교실 문을 열었다.
“모르는 척해 줄게.”
문이 닫혔다.
혼자 남은 서윤은 움직이지 못했다.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종이가 손끝에 닿았다.
이번에는 오래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 전 도윤이 남긴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모르는 척해 줄게.
서윤은 문득 알 수 없게 되었다.
도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책상에 이 쪽지를 넣은 사람은 대체 누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