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사이, 한 칸 | Ep. 3 네가 말하고 싶을 때

3화. 네가 말하고 싶을 때

도윤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책상에 이 쪽지를 넣은 사람은 대체 누구인지.

서윤은 닫힌 교실 문을 한동안 바라봤다. 복도에서는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도윤을 따라가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를 다시 꺼냈다.

새 학교는 마음에 들어?

이번에는 오래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아무리 다시 읽어도 장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는’이라는 세 글자가 그랬다.

서윤은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다시 반으로 접었다. 아주 작아진 종이를 필통 가장 안쪽에 밀어 넣었다.

버리면 될 일이었다. 누군가 재미로 써놓은 쪽지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버릴 수가 없었다.

누가 쓴 건지 알아야 했다.

교실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자리는 창가 맨 뒤였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누군가 종이를 넣었다면 다른 아이들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넣었을까.

서윤은 오늘 하루를 처음부터 되짚어보았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왔을 때는 정신이 없었다.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이 몰려왔고, 점심시간에는 하린과 급식실에 갔다. 오후 수업 중에도 몇 번 교실을 비웠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서윤은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왔다.

복도 끝 계단에 도착했을 때 아래층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익숙한 검은 머리가 먼저 보였다.

도윤이었다.

서윤은 걸음을 멈췄다.

도윤 역시 서윤을 발견했다.

“아직 안 갔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서윤은 대답하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

“왜?”

“아까 그 말.”

도윤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무슨 말?”

“모르는 척해 준다는 말.”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게 무슨 뜻이야?”

도윤은 계단 두 칸 아래에 서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농담으로 넘겼을 텐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대로인데.”

“뭘 모르는 척한다는 건데?”

“네가 말하기 싫어하는 거.”

서윤의 얼굴이 굳었다.

“너 뭐 알아?”

도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만으로 서윤의 심장이 빨라졌다.

“강도윤.”

“학교 이름 봤다고 했잖아.”

“그래서?”

“알아. 그 학교.”

서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떻게?”

“우리 누나가 거기 다녔어.”

서윤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잠시 말을 잃었다.

“누나?”

“응. 작년에 졸업했어.”

도윤이 한 계단 올라왔다.

“그래서 학교 이름 보고 알아본 것뿐이야.”

서윤은 도윤의 얼굴을 살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묻고 싶었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도윤이 먼저 알아챘다.

“네 얘기는 몰라.”

“정말?”

“정말.”

서윤의 어깨에서 조금 힘이 빠졌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알았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남았다.

“그런데 왜 모르는 척해 준다고 했어?”

도윤이 난간에 한쪽 팔을 기대었다.

“아까 애들이 전에 다니던 학교 물어봤을 때 너 계속 피했잖아.”

“그걸 봤어?”

“옆자리인데 안 보이겠냐.”

“너 나가 있었잖아.”

“나가기 전부터 물어보고 있었어.”

서윤은 할 말을 잃었다.

도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하기 싫은 것 같길래 그냥 안 물어본 거야.”

그게 전부였다.

서윤은 조금 허탈했다. 혼자 머릿속에서 온갖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 민망해졌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뭘?”

“모르는 척해 준다느니 이상하게 말했잖아.”

“이상했어?”

“엄청.”

도윤이 웃었다.

“미안.”

서윤은 그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몇 걸음 내려갔을 때 도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한서윤.”

서윤이 돌아봤다.

“근데 하나만 물어봐도 돼?”

조금 전 안도했던 마음이 다시 긴장했다.

“뭔데?”

“왜 전학 왔어?”

역시 그 질문이었다.

서윤은 도윤을 바라봤다.

도윤은 장난스럽게 웃지 않았다. 단순히 궁금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더 대답하기 어려웠다.

“말하기 싫어.”

서윤이 말했다.

잠시 후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끝이야?”

“뭐가?”

“안 물어봐?”

“방금 말하기 싫다며.”

너무 당연하다는 듯 대답해서 오히려 서윤이 당황했다.

도윤은 다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중에 네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해.”

서윤은 계단 중간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상한 애였다.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것처럼 굴면서 정작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근데 너 어디 가?”

서윤이 물었다.

도윤이 돌아봤다.

“교실.”

“아까 이어폰 가져갔잖아.”

“체육복 두고 왔어.”

서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넌 뭘 그렇게 계속 두고 다녀?”

“그러게.”

도윤도 웃었다.

서윤은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학교를 나서는 순간까지 필통 속 쪽지가 계속 신경 쓰였지만, 아까보다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적어도 도윤이 쪽지의 주인일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서윤은 평소보다 40분 일찍 집을 나섰다.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버스도 제시간에 도착했고, 교문 역시 활짝 열려 있었다.

학교에 도착한 시각은 8시 2분.

교실에는 아직 학생이 몇 명밖에 없었다.

서윤은 자기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반장이면서 담장을 넘는 사람답게 도윤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윤아!”

하린이 교실로 들어오며 손을 흔들었다.

“오늘 엄청 일찍 왔네?”

“어제 지각해서.”

“첫날부터?”

서윤은 순간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하린은 어제 자신이 지각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조금.”

“몇 분?”

“3분.”

“그 정도는 지각도 아니지.”

하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우리 반에는 매일 20분씩 늦는 애도 있어.”

“누군데?”

하린이 말없이 서윤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서윤은 웃음을 터뜨렸다.

“반장이?”

“그래서 올해 반장 뽑혔을 때 다들 난리 났잖아.”

“왜 뽑은 거야?”

“애들이 뽑았으니까.”

“인기가 많아?”

서윤이 무심코 물었다.

하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뭐가?”

“궁금해?”

“아니. 그냥 반장이라니까.”

“흐음.”

하린이 의미심장하게 서윤을 바라봤다.

“뭐야, 그 표정.”

“아무것도 아닌데?”

서윤이 더 물으려는 순간 교실 앞쪽에서 누군가 하린을 불렀다. 하린은 친구에게 달려갔다.

서윤은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그러다 필통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에도 쪽지를 몇 번이나 읽었다.

혹시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 학교에서 아는 사람이 도윤과 하린 정도인 서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서윤은 주변을 한번 확인한 뒤 필통을 열었다.

접어둔 종이는 그대로 있었다.

다시 읽어볼 생각으로 종이를 꺼냈다.

그때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서윤은 놀라 종이를 책 아래로 밀어 넣었다.

“뭐 숨겨?”

도윤이었다.

“너 언제 왔어?”

“방금.”

도윤은 자리에 앉으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뭔데?”

“아무것도 아니야.”

“어제도 그러더니.”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뭘?”

“어제 교실에서 종이 숨겼잖아.”

서윤은 잠시 도윤을 바라봤다.

보여줘야 할까.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쪽지를 보여주는 순간 자신이 왜 이 문장을 무서워하는지도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아직은 싫었다.

“그냥 메모야.”

“그래.”

도윤은 더 묻지 않았다.

어제와 똑같았다.

궁금해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았다.

서윤은 책 아래에 감춰놓은 종이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강도윤.”

“응?”

“만약에 말이야.”

도윤이 서윤을 바라봤다.

“누가 네가 싫어하는 일을 알고 있는데, 너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면 어떨 것 같아?”

도윤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갑자기?”

“그냥 만약에.”

도윤은 잠시 생각했다.

“싫겠지.”

“무서울 것 같아?”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어떤 상황?”

“그 사람이 그걸 왜 알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윤이 물었다.

“누가 너한테 뭐 했어?”

“아니.”

서윤은 바로 대답했다.

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도윤도 그것을 느낀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더 묻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말해.”

“왜?”

“반장이니까.”

서윤이 피식 웃었다.

“그 말 되게 좋아하네.”

“쓸 데가 많거든.”

그때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고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오전 수업은 평범하게 흘러갔다. 서윤은 조금씩 학교의 리듬에 익숙해졌다. 쉬는 시간에는 하린과 이야기했고, 수학 시간에는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세 번째 쉬는 시간이었다.

서윤은 하린과 매점에 다녀왔다.

교실로 돌아오자 도윤은 자리에 없었다.

서윤은 의자를 빼고 앉았다.

그 순간 책상 위에 놓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작게 접힌 종이.

서윤의 걸음이 멈췄다.

어제와 똑같은 크기였다.

하린이 뒤에서 물었다.

“왜 안 앉아?”

“아…… 아무것도 아니야.”

서윤은 재빨리 종이를 집어 들었다.

심장이 빨라졌다.

종이를 펼쳤다.

이번에는 한 문장뿐이었다.

아직도 비 오는 날을 싫어해?

서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창밖은 맑았다.

햇빛이 운동장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서윤의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날의 풍경이 떠올랐다.

쏟아지던 비.

젖은 운동화.

휴대전화 화면을 가득 채우던 메시지들.

그리고 빗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얼굴.

서윤은 급하게 종이를 접었다.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도윤이 들어왔다.

서윤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그에게 향했다.

도윤은 친구와 이야기하며 자기 자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서윤은 손에 든 종이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다시 도윤을 바라봤다.

어제 자신의 이전 학교를 본 사람.

자신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아챈 사람.

그리고 조금 전, 쪽지가 놓여 있던 순간 교실에 없었던 사람.

서윤은 그제야 깨달았다.

도윤이 쪽지를 쓴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도윤이 자리에 앉으며 서윤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안에서 종이가 천천히 구겨졌다.

도윤이 다시 물었다.

“한서윤?”

서윤은 그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이 아이를 너무 빨리 믿어버린 걸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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